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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편지

+ 천국편지 / 헤이, 고통을 가게 해라 & 가끔 너는 유목민을 부러워한다

 

 

 

천국편지 / 헤이, 고통을 가게 해라


헤이, 고통을 가게 해라

Hey, Let Go of Suffering


Heavenletter #5806. - God  . October 17, 2016

http://heavenletters.org/hey-let-go-of-suffering.html


 



신이 말했다.


너는 삶의 노선을 따라 어디선가, 아마도 이른 나이 때에, 고통이 지구의 영역에 따라 온다는 것을 배웠느냐? 네가 고통으로 항복해야 한다고, 이런저런 식으로 고통이 너에게 도달하고, 너를 찍어 누른다고? 너는 네가 고통에 대해 준비해야만 한다고, 네가 고통에 대항해 너 자신을 운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느냐?


너는 준비되었다. 제 자리에, 준비, 출발. 너는 고통에 대항해 뻣뻣해진다. 네가 다시 튀어 오르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다. 어쩌면 너는 고통의 운명으로 사직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불리한 공산을 발명하고, 너 자신에게 약한 선발권을 준다.


나의 친애하는 이들아, 너 자신을 고통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은 너를 긴장하게 만든다. 기대된 고통과 고통의 실제 발발이 둘 다 너를 긴장하게 만든다. 고통과 고통의 두려움, 고통이나 고통의 두려움은 너에게 고통을 만든다. 이번 생애 동안 너는 고통을 기다리기로 구성되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그것을 경계하며 망을 봐왔다. 고통에 대해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너는 너 자신을 준비된 목표로 만든다. 삶이 너를 명중시킨다.


확실히, 너의 욕구들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에 상관없이, 너의 욕구들의 성취가 여전히 너에게 불가피하게 욕구될 더 많은 욕구들을 남기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위험 속에 말이다. 너는 너 자신에게 미리 경고한다. 네가 여전히 바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너의 욕구들과 그것들의 성취가 아직 너의 문에 도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어쩌면 너는 이런 식으로 삶을 표명해왔는지도 모른다. 너는 삶에게 말해왔다. “서둘러! 빨리 서둘러. 난 고통을 겪고 있어. 난 내가 바라는 것을 기다리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어. 삶아, 지금 나의 욕구들로 대답해라. 내가 소리치는 것을 내게 줘, 내게 다오.”


너는 너의 발을 구르는 것이나 애걸하는 것이나 징징거리는 것이 네가 원하는 것을 너에게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느냐? 네가 무언가를 강하게 원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이 네가 그것을 원하는지, 얼마나 많이 네가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에 상관없이, 그것이 스케줄대로 너에게 와야만 함을, 또는 전적으로 너에게 올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끔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거나 요구하지 않는 것이 단순히 너의 문으로 그 도착을 재촉한다. 너의 욕구들의 도착은 네가 지구상에 존재하기 위해 가진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확실히 너에게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좋다. 무엇이 너를, 너에게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네가 또한 불평하는 것이 또한 완전히 좋다고 생각하게 만드느냐?


나는 나에게 요청할 수 있다. “신이여, 고통에 대한 나의 생각이 나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반면, 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을 곧 바로 내게 가져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왜 그렇습니까?”


친애하는 이들아, 설명들이 필요 없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 네가 설명을 원한다는 것이 이미 어떤 불만의 양을 제시한다. 아마도 너는 네가 좋은 행운을 믿는 것보다 더 많이 고통을 믿을 수 있다. 너는 반감을 가지고 남을 수 있고, 어떤 종류의 삶과의 앙갚음을 가질 수도 있다. 좋은 성품이 아니다. 삶이 오는 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이것이 일어난 것이다This is what happened”이거나, 아니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This is what didn’t happen.” 그것이 너나 다른 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다. 왜인가 나 왜 아닌가에 대해 결론으로 뛰지 마라. 누가 심지어 무엇이 애초에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느냐, 왜인지 왜 아닌지를 제쳐두고라도? 네가 안다고 너무 확신하지 마라. 너는 많은 추측들을 만들 수 있고, 결코 알지 못한다.


너 자신에게 묻는 것이 더 낫다. “흠, 내가 여기서부터 이디로 가지?”


너는 알고 싶어 한다. “나의 다음 걸음이 무엇이지? 내가 챔피언인가, 아니면 패배주의자인가? 얼마나 많이 내가 기다리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이 내가 가게 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이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되는가? 내가 모든 나의 기쁨의 구슬들을 가방에 넣었고, 그래서 지금 내가 입술을 비죽거리는가?”


너 자신이 물어야 하는 자이다. 세상이 아니다. 너는 바보처럼 굴 필요가 없다.


좋아하든 아니든, 삶은 너에게 삶을 빚지고 있지 않다. 삶 그 자체가 너에게 주어진 하나의 큰 선물이다. 기뻐해라. 감사하다고 말해라, 그리고 삶이 다음에 너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보아라.


어떤 길의 자국을 너는 지금 따르고 있느냐?





가끔 너는 유목민을 부러워한다


가끔 너는 유목민을 부러워한다

Sometimes You Envy the Nomads


Heavenletter #5807. - God  October 18, 2016

http://heavenletters.org/sometimes-you-envy-the-nomads.html



신이 말했다.


이런 저런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이것은 무엇인가?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가? 잃는 것은 네가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함에 대한 질문이기 쉽다. 그것은 “내가 그걸 어디에 두었지?” 하고 묻는 너의 질문이기 쉽다.


아마 너의 마음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너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감춰두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무언가를 어딘가에 치워 놓았거나, 네가 그것을 치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네가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멍할 수가 있는가? 너에게 그처럼 중요한 무언가를. 그것은 어딘가에 있다. 아니면 그것이 결코 없었다.


가끔, 다른 날에, 그 놓친 물건이 너 앞에 나타난다. 여기 그것이 있는데, 갑작스럽게 바로 너 앞에. 그리고 가끔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고, 너는 너의 가슴으로부터 어떤 덩어리를 느낀다.


인간 존재들은 물건들을 잘못 놓는데, 심지어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것들조차. 심지어 네가 삶의 길에 있을 때에도, 너는 길을 잃는다. 오, 단순한 생활이여. 옛날에는, 삶을 사는 것이 더 단순했다. 너는 그것이 그랬음을 확신한다.


너는 그들의 담요들을 말고, 아마 그것들 안에 약간의 옥수수를 들어잇는 한 두 개의 냄비들을 가진 유목민을 부러워한다. 그것이 그들의 수집이었다. 어떤 청구서도 메일이나 인터넷으로 오지 않았다. 기차 스케줄도, 만들거나 기억할 예약도 없었다. 삶이 있는 그대로, 너의 손끝에서 살아졌다. 양말 서랍이 없었다. 잃어버릴 양말이 없었다. 그러한 물건들의 목록이 결코 너의 마음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너의 마음이 거대한 내용들의 목록을 가지고 풍선처럼 커져야만 했던 것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너는 너의 마음속에 나를 수 있느냐?


너는 너의 마음이 정보의 백과사전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하듯이, 일들의 그러한 분류를 원하지 않는다. 너는 너의 할머니의 도자기를 갈망하고, 그러나 너의 도자기 장이 가들 차 있다. 네가 빈 공간을 갈망하는 동시에, 너는 모든 것을 변두리까지 채우는 것에 사로잡힐 수 있다.


친애하는 친구들아, 무엇이 정말로 잃어버린 것이고, 언제 너의 식품 저장실이 그처럼 꽉 찼느냐?


네가 너의 소유물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과, 매듭이 묶여졌다.


그리고 오, 맙소사, 네가 가진 기억들의 수집, 모든 종류들의 기억들의 수집이 있다.


네가 과잉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너는 그것을 원하지 않지만, 너는 그것을 고집한다. 오, 네가 얼마나 단순한 삶을 동경하는가, 그리고 너는 너의 삶을 채우기를 얼마나 동경하면서, 그것을 단순한 것으로부터 멀게 만드는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 혼합이 모두 무엇에 대한 것인가?


아마 네가 그처럼 부러워하는 유목민들은 단순한 현재 속에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너는 심지어 사진들을 모은다. 너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이고 같은 것임을 보기 시작할 수 있다. 어느 것도 정말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 두 개의 개념들이 너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되었는가.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너는 모든 너의 힘으로 매달릴 수 없는 것으로 매달린다.


너는 수집가가 되기를 멈추는 방법을 알지 못하며,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으로 매달리기를 원하는 이 열렬한 수집가 말이다.


너는 기록들의 수집가가, 아마 네가 여기 지구에 있었다고 말하는, 그리고 네가 지금 여기 있다고 말하는 무언가의 수집가가 되기를 원한다.


만약 수집할 아무 것도 없었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것이나 잊어버린 것 같은 일이 있겠는가? ‘어디’라는 말이 어디 존재할 수 있는가? ‘별견되지 않음Not to be found’이 뻔한 말이 될 것이다. ‘찾지 못함Not to find’은 삶의 하나의 진실이다.


만약 네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면, 확실히 너는 존재했었다. 만약 네가 모든 것을 담는 하나의 그릇보다는 한 세트의 도자기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 너는 네가 하나의 분리된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매달릴 수 있다.


잊어버렸어? 자, 잊어버렸다. 잃어버렸어? 자, 잃어버렸다. 찾는다고? 자, 하나의 원정 위에 있다.


지금, 여기에 또한 다른 이론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Nothing is lost’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너는 어리석음을 떠날 수 있다. 너는 문제들을 생략할 수 있다. 너는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네가 과거로부터 자유롭다고, 네가 미래로부터 자유롭다고 명령한다. 사랑하는 이들아, 너는 현재 속에서 자유롭게 가는 영혼이다. 너의 영혼을 축복해라. 이것이 너다. 영혼이다. 수집할 아무 것도, 잃을 아무 것도 없는데, 심지어 너의 생명도 그러하며 — 너는 살아있다. 잃는 것과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려라. 세부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마라.


너를 추구하는 모든 세부들은 단지 그것, 세부들일 뿐이다. 날고 있는 새가 되어라. 새가 노래하는 것을 즐겨라. 나와 함께 날자.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9872 신의 편지/1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