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편지

+ 천국편지 / 신의 의지는 신의 글쓰기와 모든 것에서 그 길을 이끈다 & 타이밍이다!

+ 쉬 리 + 2019. 1. 23. 14:30

 

 

 

천국편지 / 신의 의지는

신의 글쓰기와 모든 것에서 그 길을 이끈다


신의 의지는 신의 글쓰기와 모든 것에서 그 길을 이끈다

God Will Lead the Way in Godwriting™ and Everything


Heavenletter #6570 - God

Published on: January 21, 2019

http://heavenletters.org/god-will-lead-the-way-in-godwriting-and-everything.html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너는 네가 살고 있는 그 땅의 공기로 숨을 쉰다. 모든 문제들 가운데 자리와 네가 또한 하나이다. 사실의 문제로, 어떤 것도, 누구도 너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발견과 자기-발견이 있으며, 존재하는 모든 발견들 중에서 말이다. 너는 네가 숨 쉬는 그 공기를 들이 마신다.


크리스토프 콜럼버스가 신대륙과 마주쳤을 때 그가 어떻게 느꼈을까를 상상해봐라. 네가 너 자신을 발견하는 어디서든, 발견할 너의 더 많은 것이 있고, 너는 신이 날 것이다. 아, 자기-발견이란!


너는 너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너는 너의 자신을 작은 것들 안에서, 그리고 거대한 웅장함 속에서 또한 발견한다.


어떤 풀잎이 위대하지 않으냐? 어떤 별이 친숙하지 않으냐? 어떤 정적이 땅을 흔들지 않느냐? 어떤 경이로움이 보기에 경이가 아니냐? 어떤 이야기가 별빛으로 보여 진 것이 아니냐? 어떤 놀라움이 놀랍지 않으냐? 세상 안과 세상 밖의 무엇이 극도의 사랑에서 너의 무릎을 꿇게 할 수 없는가?


네가 걸려 넘어지지 않을 무엇이 존재하느냐? 어떤 위대함이 네가 될 수 없느냐? 나는 사실적 문제를 말한다. 나는 사실보다 더 큰 차원인 것으로부터 말한다. 차원 너머로부터, 그리고 차원-없음으로부터 너와 나는 말한다.


너 자신은 다차원적이고, 지구상의 모든 영혼들과 연결된 알려진 모든 차원들을 넘어간다. 너는 위대한 것보다 더 위대하다. 네가 현재 알고 있다고 여기는 어떤 것보다 더 큰 지식이 있다. 확실히, 삶에서 너는 하나의 탐험가이다. 너는 네가 상상하는 무엇보다도 더 위대하다. 너는 네가 아직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하다. 그래, 너는 믿음을 넘어 있고, 여전히 너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며, 매일 밤에 자러 간다.


모든 것이 상상되었다는 감각이 또한 있다. 너는 너 앞에 그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상상한다. 너는 또한 네가 시간의 문제로 부르는 이 순간에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데, 네가 그것이 얼마나 멋지거나, 멋지지 않다고 발견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너는 또한 알고 있고, 너는 또한 네가 감히 믿는 것보다 더 많이 감지한다. 그래, 너는 믿음을 넘어 있고, 상식으로 부르는 것을 훨씬 넘어 있다. 너는 행할 경이들을 가지고 있지만, 너는 시간과 공간 너머로부터 온다. 너는 어떤 소용돌이를 넘어 있다. 너는 삶 그 자체를 넘어 있다. 너는 한바탕의 에너지이거나, 네가 너의 손가락을 꼭 짚을 수 없는 무엇이다.


너는 단지 우주 속의 하나의 다이아몬드처럼 마차에 타려고 한다.


너는 네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꿈꾸기 시작할 수 없지만, 너는 이미 너의 가장 황당한 꿈들을 생각할 수 있다. 너는 거의 시작하지 않았고, 여전히 너는 시작도 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너는 합성물이 아니다. 너는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을 넘어 있다. 너는 특별한 것을 넘어 있고, 외계의 것을 넘어 있으며, 시간이나 공간에서 상상된 것을 넘어 있거나 더 멀리 놓여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 있다.


사랑하는 이여, 너와 나는 떨어져 있는 심장 박동이 아니다. 하나의 합의된 심장박동이 있다!


네가 신의 글을 쓸 때, 나의 생각들이 하나의 구술이나 하나의 생각이 항상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목걸이와 같다. 너의 것이 나를 위해 글을 쓰는 너의 손일 때, 너는 내가 어디로 너를 데려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너는 단지 어떤 주어진 순간에 진행하는 너를 느낄 뿐이다. 너는 어딘지를 알지 못하지만, 단지 나의 다음 몇 개의 구슬들이 네가 가고 싶은 어딘가로 너를 데려갈 것임을 알고 있다.


나, 신은 정확히 직선적이 아니다. 논리는 제한들을 가지고 있다. 나, 신은 논리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 나는 네가 보는 어디서든 제한들을 넘어 있다. 나는 너를 네가 의식적으로 전에 있던 곳으로 알지 못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나는 지금 너를 의식적으로 데려간다. 왜 삶을 더 멀리 볼 수 있고, 너를 여전히 미지의 길로 데려갈 수 있는 다른 눈으로 응시하지 않느냐? 나는 이끌 것이다. 너는 알고 있는데, 네가(너라고 지칭된 것이) 어떤 것도 모험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생각을 잘 알고 있음을 말이다.





타이밍이다!


타이밍이다!

Timing!


Heavenletter #6571 - God

Published on: January 22, 2019

http://heavenletters.org/timing.html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너와 내가 하나의 무늬로서 비행기를 타거나 타지 않고 여행할 수 없는 곳이 어디 있느냐? 오, 사랑하는 이여, 그것은 그렇고, 하나됨은 하나이다. 하나됨은 단단하지만, 확실히 엄격하지 않다. 만세! 하나됨은 무한 그 자체이다. 이것이 매 순간 내가 너의 손을 잡는 방법이고, 네가 나의 손을 잡는 방법이다. 우리의 하나의 밀회는 영원한데, 발렌타인 카드가 그것이 가능한 한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에 말이다.


나는 너에게 한 가지 일을 말하는데, 네가 나 없이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고, 그리고 내가 너 없이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고 말인데, 네가 나의 사랑하는 이이고, 내가 너의 사랑하는 이일 때 말이다.


이 하나됨은 눈부시고, 단단하며, 유동적이다. 할렐루야! 하나됨은 영원하고, 언제나 있다. 언제나 같은 길에서 하나됨은 한데 꿰매어졌고, 그처럼 열렬하고, 그처럼 단일하며, 그처럼 아름다운 사랑 속에서 자유롭다.


사랑은 모든 곳으로부터, 그리고 어느 곳으로부터도 온다.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말하게 해라.


크라이스트Christ가 처음에 물 위를 걸었을 때, 크라이스트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크라이스트가 처음으로 바다를 갈랐을 때, 그는 그것을 숙고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의논하지 않았다. 크라이스트가 처음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을 때, 크라이스트는 그 자신에게 “내가 그것을 만들까, 혹은 만들지 말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았다.


하나의 필요성이 일어나고, 그리고 거기 크라이스트가 있었고, 그는 물 위를 걷고, 바다를 가르고, 물을 포도주를 바꾸고 있었다. 이것은 신성Divinity이었다. 필요성이 있었다. 크라이스트Christ가 여기 있었다. 크라이스트가 하나의 필요성으로 대답했다. 하나의 필요성을 충족하는 것은 보통 준비 없이 하나의 순간적인 행동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은 생각해낸 결정이 아니다. 같은 것이 바다를 가르는 것과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에도 진실이다. 그것은 그 순간이 너에게 성취할 것을 부르는 하나의 저절로 일어나는 필요성이다. 그것은 큰일이 아니다. 그 행동이 일어난다. 네가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것은 다된 일이다. 그것은 사랑의 노동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노동이 아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은 행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자기-의식적 연습이 아니다.


만약 크라이스트Christ가 그것을 헤아리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면, 그 순간이 지나갔을 수 있다. 너는 하나의 충동을 이해한다. 그것은 눈이 맞아 함께 달아나는 것과 같다. 너는 너무나 오래 기다릴 수 없고, 그 순간은 지나간다. 너는 달아나는 중에 정신없이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너는 그것을 결정한다. 기적을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네가 그것을 알기 전에 이루어지며, 거기 네가 있다.


모든 아기가 걷고 말하며,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며, 또한 아기의 처음 미소도 그렇다. 그것은 스케줄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적절한 때이다. 아기는 계획된 교과과정이 없으며, 그 아이는 숙고 없이 분별하고, 자란다. 아이는 별들을 응시하고,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응답하는 법을 배운다. 그 아이는 이것의 어느 것을 대백과사전이나 구글Google에서 찾아볼 필요가 없다.


발견가는 어떻게 발견으로 이끌리는가? 항해자는 어떻게 바다로 이끌리는가? 본능이 심지어 너무나 훈련된 단어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여, 그것은 고도로 혼합되고, 상응하는 사랑이고, 그것을 모든 곳으로 뿌리는 나의 본능임에 틀림없다.


자연은 계절들을 정하고, 계절들은 앞으로 나오며, 그들 자신을 나타내면서 사는데, 마치 그들이 특허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나의 계절이 그 기쁨을 드러낼 때, 그 계절이 그 자신을 훈련했다고 말해질 수 있는가? 그것은 한 아이가 그의 삶을 기쁨으로 여는 같은 식으로 그 자신의 의지로 왔다.


갑자기, 봄처럼, 아이는 앞으로 움직인다. 그 아이는 시계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와 같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내부 메카니즘을 가졌고, 너도 또한 그렇다. 무언가가 그 자신의 시간에 온다. 아이슈타인은 그가 6살이 되었을 때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만성형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말할 준비가 되기 전에 생각할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그는 아마도 그가 어떻게 글을 쓰는 법을, 혹은 그때 쯤 하나의 수학적 공식을 쓰는 법을 알았는가를 책들로 썼을 수도 있었다.


사랑하는 이여, 모든 것이 그것의 좋은 타이밍 안에 있다.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12092 신의 편지/1740